1. 사리 출현과 탑의 종교적 의미
기원전 6세기경 인도,
석가모니 (본명: 고타마(성) 싯다르타(이름))가 80세의 나이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이후 석가모니의 장례를 치뤘고, 장례 방법은 다비(불교식 화장)로 행해졌다
석가모니를 화장한 자리에 남아있던 것이 바로 '사리'였다
사람들은 이 귀중한 사리를 모시고자 하였고, '탑'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하였다
즉, 탑이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절을 가면 사람들이 불상도 아닌데 탑을 빙빙 돌면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탑에 무엇이 있길래 그러지? 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탑의 기원을 알면 의문이 풀린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는 탑은 예로부터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었으며
위와 같은 '탑돌이'라는 풍습은 탑을 돌면서 개인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고자 함이었다
+) 사리는 탑 외에도 별도 공간이나 불상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2. 사리의 종류
1) 누구의 사리인가?
(1) 진신사리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
<1.사리 출현>에서 석가모니를 화장하고 남은 사리는 모두 진신사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총 5곳에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며,
그곳을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적멸보궁 = 부처님이 *적멸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곳
(*적멸 = 니르바나, 불어서 꺼진 상태, 열반 = 모든 번뇌가 사라진 상태)
: 통도사, 봉정암, 법흥사, 정암사, 오대산 상원사
(2) 승려의 사리
승려의 몸에서 나온 사리
2) 어떤 형태인가?
(1) 보주형 사리 = 동그란 보석
(2) 골아형 사리 = 부처의 두개골, 치아, 손가락뼈 등 (화장하고 남은 부처의 유골)
+) 부처에게서 나온 진신사리, 골아형 사리는 매우 드물고 희귀했기에 가치가 높았다
3. 사리의 신이
사리는 평범한 구슬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능력이 있었다고 기록된다
- 사리감득: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니 사리가 '짠~'하고 나타남
- 사리분신: 사리가 여러개로 나뉘어 수가 늘어남 (어제는 한 개였는데, 오늘은 열 개가 되었다?!)
- 발광: 빛이 남 ((ex) 오색 빛을 내며 공중에 떠다님)
- 불쇄: 깨지지 않고 불에 타지도 않음
이렇게 신비롭고 놀라운 능력들은 불교에 대한 믿음을 강화,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4. 사리 신앙의 활용
과거로 돌아가서..
사리를 받아 탑에 공양하고 이를 모시는 행위,
특히 희소한 진신사리/골아형 사리를 받아 모시거나
사리의 신이한 능력을 체험하는 것은
✔ 부처로부터 통치자 자격을 부여받은 것,
✔ 부처가 인정한 왕권,
✔ 부처가 돌보아주는 왕실,
✔ 부처가 지켜주는 나라
등등....으로 여겨지게 함으로써
왕권을 강화시키고
왕실의 권위를 세우며
민심을 규합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
ex1) 백제의 일화
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가 2매였는데 묻으려하자 신기하게 3매가 되었다
💭: 부처의 권위가 왕실에 깃들었음을 드러내고, 왕실에 대한 권위를 높였을 것이다
ex2) 고려의 일화
현종은 진신사리와 불아(부처의 어금니)를 직접 맞이하여 궁궐 안에 봉안하였다
💭: 그 귀한 부처의 사리와 어금니뼈를 왕실로 가져옴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꾀하고, 왕권을 높이고자 하였을 것이다
ex3) 고려의 일화
고려 고종 몽골과의 전쟁 시기, 장군 김리생과 시랑 유석이 고종의 명을 받아 통도사에 들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확인하고 예배하였다
💭: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불안한 민심을 안정시키고, 전쟁에 출전하는 장수들에게도 전의를 복돋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왕실에서는 일부러 전국적인 규모로 큰 탑을 세우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에서 묘사한 신라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절들은 별처럼 벌려 있고
탑들은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다"
어디에서나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보이는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교회가 절로 바뀌었을 뿐..
이러한 사리신앙은 불교의 영향력이 축소된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이어져왔다고 한다.
출처: [한국의 불교 신앙](K-MOOC) 강좌를 수강하며 요약/복습한 내용입니다